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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원장 선생님 바꿔

by esstory 2008. 7. 4.

 

비가 와서 그런지 어제, 오늘 아침에는 와이프 어깨 통증이 한결 심해졌습니다.

멀쩡하기만 하던 와이프 어깨가 아픈 건 약 3주전 병원 치료를 받고부터였습니다.

3주전 와이프가 감기 몸살이 심하게 앓고 나서, 목 주위에 뭔가 콩알만하게 부어 오르더니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커져서, 여의도 직장에서 가까운 XX 병원으로 진찰을 하러 갔습니다.


림프절결핵이 의심된다는 의사 말에 서둘러 CT 촬영을 했는데, CT 에서도 너무 작아 판독이 되지 않자 이번에는 목에 주사를 놓아 조직 일부를 검사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검사를 위해 같은 병원 내에 이비인후과에 들러 목에 주사바늘을 콕 하고 찌르는 순간 와이프는 뭔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경을 건드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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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기운을 차리지 못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날은 그렇게 넘어 갔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주사를 맞은 후 엉뚱하게도 목 주위의 어깨가 아파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더군요. 제가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아프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 밤에 와이프를 안고 자야 행복한 꿈나라로 가는데, 거의 3주 동안 그러질 못했습니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1주일, 2주일이 지나 3주째 접어 들었는데도 어깨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해당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다른 일 때문인지 병원에 나오질 않아서 다른 의사 선생님께 어깨가 아픈 원인을 여쭤보니, 가끔이지만 주사를 놓을 때 신경을 건드릴 수 있다고 했답니다.  의사와 간호사인 동생 내외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더군요.

 

3주가 되어도 어깨가 나아지지 않자 병원에 가서 좀 따졌나 봅니다. 어떻게 주사를 놓았길래 어깨가 아프냐고.

그랬더니 간호사 분께서, 고의가 아니라 치료를 위해 진료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가뜩이나 어깨가 아파 신경이 예민해 져 있어 뭔가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으려고 했던 와이프는 크게 실망한 모양입니다.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아픈 목과 어깨를 확인하라며 같은 병원 내의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라 귀한 업무시간 2시간을 병원에서 하릴없이 기다린 후 겨우 의사를 만났답니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 이러이러해서 목 주위와 어깨가 너무 아프다라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


목 디스크가 의심되니 CT를 찍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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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멀쩡하던 어깨가 주사를 맞고 아프더니 이제는 목 디스크가 의심된다는 어이없는 설명에 누구라도 속이 뒤집어졌을 겁니다.  게다가 무슨 CT를 한 달에 2번이나 찍는답니까?

 

와이프가 열 받아서 목 디스크가 말이 되냐고 따졌더니, 의사 선생님이(교수님이랍니다) 왜 자기한테 이 환자를 보냈냐고, 본인은 목 디스크 전문인데 잘못 보낸 거 같으니 다른 의사한테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했답니다. 이 병원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요상한 병원 때문에 열을 받을 데로 받은 와이프 덕에 그제 밤은 정말 가슴 졸이며, 구박받으면서 겨우 잤습니다.  괜히 열 받게 했다가 맞아 죽을 거 같았거든요.

 

그날 밤 밤새 내린 비 탓인지 와이프는 평소보다 어깨가 훨씬 아팠나 봅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자, 병원 원무과로 겁도 없이 전화를 했대요.

전화를 걸어


원장 선생님 바꿔주세요


라고 한마디 했더니 이 모든 짜증나는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가 됐습니다.

 

당연히 원장선생님을 바꿔주는 대신 원무과 과장으로 보이시는 분이 전화를 대신 받고, 어인 일로 찾으시느냐, 자초지종을 듣고는 죄송합니다. 내일 당장 병원으로 오시면 수간호사를 대동시켜 친절히 모시고 다니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10분 후에는 주사를 잘못 놓은, 2주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이비인후과 선생님으로부터도 전화가 왔다더군요. 정말 죄송하다고, 드문 경우이긴 한데 주사를 놓다가 신경을 건드린 거 같은데, 석 달 정도 약을 먹고 재활훈련을 하셔야 할 거 같다고 했답니다.

 

그 동안 와이프가 겪은 고통, 3주간 꿈나라로 못간 저의 피해, 와이프의 짜증과 구박을 이겨낸 저의 정신적인 헌신을 돈으로 따질 수 없겠지만, 이 정도에서 참기로 했습니다 (참지 않는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요 ^^)

 

얘기가 괜히 길어졌지만, 와이프나 저나 사실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월차를 내서 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라도 할까 하고 우스개 소리로 말했지만, 어떤 식으로 항의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결국은 와이프가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찾았지만요.

 

저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끔 고객과 통화할 일이 있는데 처음부터 윗사람 바꿔하는 고객은 정말 싫어합니다. 무조건 책임자를 찾고 사장을 찾는데, 쫄따구가 무슨 수로 책임자를 바꿉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 제일 상대하기 싫은 고객이 바로 윗 사람 바꿔하는 고객일 겁니다. 하지만,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의 경험상 큰 소리 치는 고객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돌아간다는 생각입니다. 이게 과연 옳은 세상인지. 큰소리를 치지 않아도 좋게 잘 마무리 되어야 제대로 된 세상일 텐데 말이죠.


앞으로 3개월이나 더 이 요상한 병원을 다녀야 하는 아내가 좀 안쓰럽습니다.

더 이상 아픔없이 병원을 다닐 수만 있음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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