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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발리의 택시 운전사와 영어 교육

 

재작년에 발리로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다.

발리는 하루 50달러 정도의 금액이면, 하루 종일 영어가 가능한 운전기사와 함께 발리 구석구석을 원하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5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기사 한 명을 가이드 삼아 하루 종일 돌아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호텔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기사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었다. ‘리안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 친구는 한때 블루버드라는 발리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택시 회사의 기사였지만, 호주 인들을 겨냥한 발리 폭탄 테러가 있고부터는 발리를 찾는 관광객 감소로 호텔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 밥벌이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발리에서 최하층(아직도 카스트 제도 비슷한 게 있음)에 속하는 사람이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동네에서 운영하는 스터디 그룹을 통해 영어공부를 배운 게 다라는 이 친구의 영어 실력은 - 정확히 말하면 리안의 회화 능력은 - 네이티브 스피커와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유창했다.

 

소위 대학 물을 먹었다는 나보다 훨씬 더 유창하게 농담을 섞어 가면서 시사, 스포츠, 여행, 심지어 형편없어진 한국축구에 대한 얘기까지 주고 받는 발리의 운전 기사를 보면서 도대체 중학교부터 배워온 영어가, 대학 때 나름 열심히 외운 단어들이 무엇을 위해 배운 건 지 혼동스러웠다.

 

발리는 지리적으로 호주와 가까이 있어서 호주 관광객들이 자주 들른다. 서핑의 천국인 발리의 꾸따 시내 주위에는 언제나 외국인들로 북적대고 이들로부터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시 운전사마저도 소위 말하는 먹고 살기 위한영어를 배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관련 정책 때문에 여기 저기서 난리가 아니다.

설익은 어설픈 정책을 가지고 주먹구구식으로 밀어 부치는 인수위도 문제지만, 내 생각에도 더 이상 한국의 영어 공부를 이런 식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주위에 보면 유치원에서부터 7-80만원 하는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들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를 위해 해외에 자녀를 유학 보내는 집들도 제법 많아 졌다.  이렇게 할 수 없는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질게 뻔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보상받기 위해 형편이 닿는 대로 영어 학원으로 보낼게 자명하다. – 내 자식이 영어 잘 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영어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도 제대로 된 영어회화 한마디 할 수 없다면, 그래서 자녀를 가진 부모가 이를 보상받기 위해 사교육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돈을 퍼부어야 한다면, 공교육을 바꿔서라도 획기적으로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인수위의 영어 정책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어 수업 정도는 당연히 영어 회화가 가능한 교사의 제대로 된 발음을 들으면서 자라야 한다.

수업시간에 회화 한마디 못하는 교사의 문법 수업만 달달 외운 결과가 지금처럼 밖에 나가 말 한마디 못하는 반 쪽짜리 교육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질을 가진 교사가 없다면, 다른 시설을 마련해서라도 모든 학생들에게 골고루 살아 있는, 그래서 살아 가는데 보탬이 되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공교육과는 거리가 먼, 얼마 안 있어 40대를 바라보는, 게다가 자식도 없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는 이유는 내 개인적으로도 외화 정도는 자막 없이 볼 수 있었기를 바라고, 유럽이나, 세상 어딜 가나 만나는 외국 사람들과 언어 장벽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사귀고 싶고, 원서로 된 영어 전공 서적 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번역서가 나오기를 몇 년이고 기다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영어가 안되기 때문에 살아 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도 꽤 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정규 과목에 포함시켜 가리키고, 대기업 입사시험에도 빠지지 않고 토익 8-900 이상은 되어야 기본은 한다고 보는 걸까. (하긴 공무원 시험 열심히 공부해서 동사무소에서 도장 찍는 것 보면 모든 공부가 다 배운 것만큼 가치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거창하게 영어를 국가 경쟁력 어째고 할 것도 없이 영어 하나쯤 잘 한다면 그로 인해 삶의 질이 높아지고, 배움이 깊어지고, 다가갈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고, 외국에 나가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기왕 사교육비로 엄청난 돈이 부어져야 하고 이로 인해 가진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의 자녀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야 한다면, 국가에서 일정부분 이를 책임지고, 사회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 BlogIcon 우성군 2008.02.03 15:23 신고

    정말 영어는 몸으로 부딪혀야 느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고등학교까지는 영어를 열심히 했지만 저번 유럽여행때 느꼈던 느낌은 '와 정말 이건 아니구나' 였습니다.

    그나마 대학교 어학당에서 반년 정도 회화 및 듣기 강좌를 들었는데 그때 배운 영어와 또 그 때 봤던 미국드라마에서

    배운 표현들이 회화에서는 훨씬 도움이 많이 되었거든요

    그런데도 정작 외국인 앞에서 말을 하려니 정말 두려웠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졌지만 이때까지 배웠던

    영어 문법, 회화 공부가 정말 부질없고 실제 영어 회화에 거의 도움이 안되었던 것을 알았던 그땐 정말 충격적이었죠

    • BlogIcon esstory 2008.02.03 15:31 신고

      한국에서 외국인과 대화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다 시피 하니까요.. 저도 외국인 회사에 잠시 있으면서 외국인 강사와 친해 지다 보니 그제사 말문이 조금씩 트더군요 . 그래봐야 경상도 사투리 쓰는 영어라 동남아에서나 조금 통할까..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보고 싶은 공연을 보려고 예약을 하는데, 제 발음을 못 알아 듣는 직원 때문에 속상한 적이 있었어요.
      알아 들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직원 때문에 머리에 땀나고 있었는데 다행히 뒤에 계신 다른 외국인에 도와줘서 겨우 표를 예매한 적이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간단한 생활영어 정도는 쉽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거창하게 국가 경쟁력이런걸 따질 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어디 가서도 내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쉬운 일은 아닌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