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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책]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

by esstory 2008. 6. 17.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 - 10점
차드 파울러 지음, 송우일 옮김/인사이트

 

몇 년 전 어느 식당에서 선배와 다툰 일이 있었다.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던 중에 누군가, 회사를 왜 다니느냐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선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고 답변했는데, 주제넘게 회사에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고 다닐 수가 있느냐, 회사는 조직이니 회사에 맞추어 다녀야 한다는 얘기를 꺼낸 게 화근이었다.

본래부터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면 물불 안 가리고 하는 선배였지만, 조직적인 생활에는 영 맞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말투에서 조직에 조금 적응하는 모습이 보여야 하지 않느냐는 어감이 나도 모르게 튀었던가 보다.

그 때문인지 갑자기 흥분한 선배 덕분에 분위기가 험악해 졌다. 다행히 곁에 있던 다른 분들이 잘 마무리(?) 해서 그날은 어떻게 넘어가긴 했지만, 이후부터 두고 두고, 회사를 왜 다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나에게 꼬리를 물고 다녔다.

 

*****

 

피아노의 숲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카이 라는 꼬마는 겨우 걸음마도 떼기 힘들었던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구로 여기고 단지 즐기기 위해 피아노에 매진한다.

그에 비해 아마미야 라는 친구는 부모님이 시켜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저주하면서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피아노를 배우지만, 결국 즐기기 위한 놀이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카이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책을 읽은 직후라서 그런지 만화를 보면서 나에게 되묻고 싶어졌다. 정말 나는 이 일을 좋아서 하고 있는 겐가.

특히 요즘 들어 개발자라는 직업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 - 그렇다 94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5년을 개발자로 남아 있다 보니 – 쉽게 짜증이 나고, 일들도 하나 둘씩 재미없어지는데다가 매너리즘에 빠지기 일쑤여서, 계속 해서 이 일을 잘 해 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

 

작년에 경력사원 면접을 본 적이 있다. C++ 에 익숙하고 윈도우 프로그램에 능숙한 개발자를 뽑는 자리였는데,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대단한 면접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몇 마디 질문을 던질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나는 STL 을 알고 있느냐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피면접자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나를 많이 당황스럽게 했다.

STL 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아직 써보지 못했다거나,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STL 이 나온 지 IT 업계 나이로 수백년이 지났건만 아직 써보지도 않았는데 C++ 을 한댄다.

게다가, 최근에 읽은 IT 관련 책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거의 답변을 하지 못했다.

속으로, 정말 이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좋아서 하는 것일까.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으로 회사를 다니는건 아닐 지 걱정이 들었다. 이 쪽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데도 정말이지 먹고 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은 슬픈일일 것이다.

물론 STL 을 몰라도 ATL 을 몰라도, Template 을 몰라도, 간단한 프로그램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또 코드그루나, 코드프로젝트 등에서 비슷하게 작동하는 샘플을 찾아 Copy & Paste 신공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무엇이 되려면 자기 개발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개발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자신을 채찍질 하기 힘들 것이다.

 

*****

 

이 책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는 IT 개발자에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떠나라고 조언하고 있다.

책의 원래 시발점은 인도로 개발 일거리를 빼앗긴 미국 IT 개발자들에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거리인지 되돌아 보게 하고, 값싼 노동인력에 맞서기 위해 자기 개발을 소홀이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한국의 IT 사정과 맞지 않는다는 점과 중복되는 조언들이 너무 많아 후반부로 갈수록 글의 집중도가 떨어져, 책을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던 책이었다.  결국 거진 3개월 만에 책을 다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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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는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 눈부신 성공을 이어나가면서 우리는 너무 뚱뚱해지고 게을러지고 둔해져 버렸다. 수년 동안 건성으로 일하다 보니 우리의 기술 상태는 못쓰게 되어 버린 것이다 –P28

 

CIO에게 들었던 진짜 충고 중 하나는 결코 편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일어나면서 자신이 언제든지 그 지위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의도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상기한다고 고백했다. “그게 오늘일수도 있어요” 그가 말했다. P163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맥락이다. 늘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나태해 지고 잘못된 길로 향하고, 창의력이 버릇으로 굳어 버린 일상을 만난다.

하지만, 사실 요즘은 너무 나이를 먹다 보니, 이 업계에서 더 살아 남기 위해서는 IT 책보다 정치나 화술, 손자 병법 같은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밑에 사람을 뺑이쳐서 윗사람에게 확실히 잘 보이는 방법밖에 없어 보이는 하이에나 방식의 팀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다. 아 이런 얘기를 하면 안되지 ^^;;

 

데이브 토모스와 앤디 헌트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P31

 

어째 읽는 책들이 모두 이 두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인사이트 출판사 책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걱정이다.

 

 

비즈니스 분야 경험을 자신의 능력 중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음악가가 연주 목록에 무엇을 추가한다는 것은 단지 전에 한번 연주해 봤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P44

하나 하나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프로그래머들이 요구사항을 이해한다면 같이 일하는 게 얼마나 편할까? P45

 

증권회사의 개발자로 있으면서 내가 가진 증권지식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시세, 주문, 자동 주문 정도 화면은 설계가 가능하지만, 조금만 복잡하게 들어가는 증권업무들 – 사실 너무 많고 실무자가 아니면 알기가 힘들다 – 에는 신입사원 수준 밖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요즘 신설증권사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IT 분야에서 그나마 필요 인원은 개발을 잘 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업무에 능통한 친구들이라고 한다. 개발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들은 늘려 있지만, 업무를 정확히 꾀어 알면서 설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개발자 몇 명을 붙여주면 업무 개발이 가능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과 같이 힘들다.

 

미치도록 하고 싶은 열정을 갖고 일하라 – P82

 

이런 열정을 가지고 일해 본 적은 그리 많지는 않다. 프로그램을 개발, 실행, 배포하는 성취감은 한 두 해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무뎌졌고 이젠 슬슬 귀찮기까지 하다. 뭔가 Role 에 변화가 있거나, 자리를 옮길 때가 된 것도 같다.  미치도록까지는 아니지만, 아직도 뭔가 개발하는 일은 다행히도 즐겁다.

 

멘토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첫번째 목적은 역할모델이다. 자신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더 발전하게 해줄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뭐가 가능한지 알기란 어렵다. P99

 

정말이지 역할 모델이 되어줄 존경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 모시던 부장님이 나에겐 그러한 역할 모델이었는데, 그 분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아이작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봤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어서다.” 라고 말했다. 뉴턴처럼 총명한 사람이라면 앞 세대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P123

 

거인의 어깨를 잘못 해석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제대로 해석하게 되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과거 업적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쉽게 올 수 있도록 했다는 진리

 

구글은 결코 잊지 않는다. P228

 

가끔은 이 블로그에 푸념처럼 적는 글들이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발설해서는 안된 내용, 어설픈 생각들.. 인터넷은 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퍼식은 이 이야기가 ‘가치 경직성(value rigidity)’ 이라는 개념을 묘사한다고 설명한다. 가치 경직성이란 어떤 것의 가치를 너무 단호하게 믿어 그것에 대해 더 이상 객관적으로 의문을 품을 수 없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P267

 

지금까지 익혀왔고, 밥줄이 되어 왔던 기술들이 어느 날엔가는 다른 기술로 분명 대체될 것이다. 우리 회사만 해도 PL/1 으로 운영해 오던 호스트 시스템이 조만간 C 와 자바로 변경될 예정이다. 객체지향 프로그램과는 담을 쌓아온 많은 개발자들에게 날벼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들 중 상당 수는 해당 기술로 10여 년 이상 일해왔고 나름대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프라이드도 강한 분들인데, 갑자기 그 동안 사용해 오던 기술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물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이도 현실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 남기 위해 매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이 쪽 업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상당히 많다. 자바나 C++ 도 언젠가는 다른 기술로 대체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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