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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책]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

by esstory 2012. 11. 18.


 

남쪽으로 튀어! 1 - 10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은행나무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없나 하고 책장을 찾다가 발견한 책

처음에는 만화책인줄 ^^

주인공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 우에하라 지로.

하지만 지로를 둘러싼 환경은 참 어지럽다.

지로를 가장 어지럽게 하는 장본인은 바로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

젊은 시절에는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에서 행동파 대장으로 있었고

미일 안전보장 조약 개정에 반대해서 학생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이제는 조직(?)에서 나와 무정부주의자로 변신해서 국가라는 존재 자체를 멸시하는 나름 자기 인생관이 뚜렷하신 분

하지만 이제 겨우 6학년인 지로에는

집에서 하릴없이 매일 글 쓴다고 일도 안 하는 백수 아버지에

수학 여행비 내역에 비리가 있다고 매일 같이 학교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담임선생님과 논리 대결을 펼치겠다고 괴롭히고

국민연금 걷으러 온 사람에게 국가가 해 준 게 없으니 당장 나가라고 맨날 싸우는 아버지는

그저 창피한 존재일 뿐이었다.

 

초등학생인 지로에게도 인생에 큰 고비가 찾아온다.

중학교 불량 선배와 같이 어울려 놀던 '구로키' 라는 친구로 인해 엮여 들어가

불량배에게 돈을 벌어 받쳐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버지는 돌아이라 말해 봐야 소용이 없고

선생님께 말씀 드려도 일을 더 크게 만들 뿐이고 누구에게 의지 할 곳 없는

졸지에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버린 지로는 이 위치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한국에서도 만연한 친구 괴롭히기 인해 많은 아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소설 속의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니 나 스스로 만약 지로라면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할까 고민하게 되더라.

하지만 내가 저 상황이라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다. 저 상황이라면.

하지만 지로의 아버지는 평소보다 표정이 어두워진 지로에게 알쏭달쏭한 말 한마디만 남긴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잖아? 우에하라 지로,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섰구나' – p131

 

우여곡절 끝에 지로네 가족은 지로 아버지 이치로와 그 후배가 엮인 큰 사건에 휘말려 파란만장했던 도쿄시절을 정리하고 갑자기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대충 지도를 보면 일본 본토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어 설마 저기가 일본땅인지 생각도 못했던 곳.

오래 전에 일본에 편입 되었지만,

아직도 본토 사람에 대한 반감이 많고 본토 지배 없이도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땡전 한푼 없이 몸만 이사 간 지로네 가족들을 도와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고 정착할 집(남의 땅에 불법 건축물이었지만)도 주고 음식도 나눠주는 등, 요즘 시대 사람들 같지 않는 친절함에 지로네 가족 모두가 감동 받는다.

 

하지만 이곳 섬으로 옮겨와도 아버지 이치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는다

 

"모모코, 국가 교육이라는 건 애초에 잘못되었어. 미국을 좀 봐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여 죄 없는 민중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자기들만이 정의라고 하고 있잖아. 그거야말로 국가적인 사상교육의 결과야. 일본은 그런 미국의 앞잡이 격이라고"

"학교는 국가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 합니다" p152

학교는 지난 수세기 동안 지배 그룹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끼우기 위한 곳이라 지배 그룹을 위한 맞춤 인간이 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아버지와 의견 충돌로 지로와 지로의 동생 모모코는 몰래 몰래 학교에 다니는데……

 

아버지 이치로의 이런 반골 정신, 반정부 아니 무정부주의는 결국 이 섬에서도 땅을 사 콘도 사업을 하려는 토건 회사와 큰 충돌을 일으키고 전국 방송에 생중계까지 되어 스타(?) 가 된다.

어딜 가도 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이치로라는 캐릭터에게서 작가는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사회주의와 반미, 반체제의 기치를 내걸고 드라마틱한 활동을 펼쳤던 우동권 선배들의 시대는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치열하고도 순정한 열정이 넘쳤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오쿠다 헤데오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의문(역자 후기)

"요즘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잊혀져 버렸지요. 하지만 내가 막 사회에 나왔을 무렵만 해도 한 세대 위의 사람들은 모두 학생운동의 냄새를 짙게 풍겼어요. 당시는 그들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보니 '그건 오류였다' 라는 점이 잔뜩 나오더군요. 만일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갔다면 우에하라 이치로 같은 인물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2005년 6월 야후 저팬, 문예인터뷰

 

가볍게 읽으려고 든 책인데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곳곳에 답답한 늪도 많았다.

하지만 2권으로 나눠진 이 책을 한번 잡으면 마지막까지 결말이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는 작가의 필력이 참 돋보인다.

2013년에 한국 배우 김윤식이 '이치로'로 열연한 영화도 개봉된다고 하니 많이 기대가 된다. 영화가 나오면 꼭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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